차 식(車 軾)은 송도 사람으로서 부지런히 배우고 글을 지었으며, 또 시를 잘 짓는다는 명성이 있었다. 일찍이 벼슬하다가 집에 있는데 유수(留守)가 식(軾)을 정종 릉의 한식전사관(寒食典祀官)의 일을 맡아 보도록 했다.
식이 능에 이르러 정자각을 보니, 해마다 비가 새어서 서까래가 모두 썩었고, 먼지가 벽에 가득했으며 뜰에 풀만이 우거졌고 상·탁자·기명은 오래 되어 더럽고 깨져 있었다. 식은 좌우를 돌아다보면서 차탄하였다.
이윽고 나이 많은 수복(守僕:조선조 때 묘,능,社,서원 등의 제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사람)이 와서 뵙자, 식은 말하기를,
"나라의 능이 이렇게 매몰된 줄이야 일찍 몰랐었다." 하니,
수복은 말하기를,
"이 능은 조천(종묘의 본전안의 위패를 그 안의 딴 사당인 영녕전으로 옮겨 모시던 일)한 지가 이미 백 년이 지났는데, 1년에 한식 이외에는 제사가 끊어집니다. 제관도 서울에서 보내는 것이 아니고 술잔을 올리거나 절을 하는 예도 떳떳한 법에 맞지 않으며, 희생에 쓰는 짐승은 파리하고 올리는 술이 신 것을 예사로 봅니다. 사당문은 한 번 닫히면 1년이 다 가도록 고요하며 지키는 군졸도 또한 줄어져서 비바람을 수호할 사람이 없으니, 어찌 황폐하지 않을 수 있겠읍니까?"하였다.
식은 이 말을 듣고 처량하게 느껴, 친히 소제를 한 다음, 제물을 정하게 차려가지고 목욕하고서 제사를 올렸다.
제사가 끝나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 자주빛 옷을 입은 중사(中使:궁중에서
왕의 명령을 전하던 내시)가 와서 식에게 소명을 전하기를,
"주상께서 대궐에 앉아 계시니 나를 따라 들어가시지요." 하고
드디어 식을 인도하여 큰 대문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바라보니 대궐 집은 크고 깊은데 임금이 어탑 위에 앉아 있었다. 황공하여 뜰에 엎드리니 중사가 들어오기를 재촉하므로, 탑 앞에 엎드리자 임금이 이르기를,
"전번까지 온 제관은 모두 정성을 들이지 않아 제물이 보잘것 없어서, 내가 흠향하지 앉은 지가 오래였다. 그런데 오늘은 음식이 몹시 정결하기에 내가 심히 가상히 여긴다. 들으니 네 어미가 지금 대하병을 앓는다니 내가 좋은 약을 주리라."
하고 또 이르기를, "반드시 뒤에 복이 있을 것이다."하는 것이었다.
식은 꿈에서 깨어서도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다가 날이 밝자 동구로 나왔다.
매 한 마리가 뒤에서 가볍게 날아 지나가더니, 큰 물고기 한 마리를 말 앞에 떨어뜨린다. 그 생선은 생기가 팔팔하여 땅에서 뛰는데, 뱀장어로서 그 길이가 한 자나 되었다. 식은 꿈속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연일 국을 끓여서 어머니께 드렸더니, 그 병이 드디어 나았다. --- 송도기이, 대동야승 제 71권.
